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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동옥저를 빼앗은 고구리 태조대왕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6022 스카이데일리, 신라의 동옥저를 빼앗은 고구리 태조대왕 스카이데일리, 와 등 중국의 여러 사서에 “신라는 고구리의 동남... www.skyedaily.com 와 등 중국의 여러 사서에 “신라는 고구리의 동남쪽에 있으며, 한나라 낙랑 땅에 있었다. 옥저(沃沮)·불내(不耐)·한(韓)·예(濊)의 땅을 차지하였으며 백제에 부용(附庸)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옥저는 본시 신라 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예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음 컬럼(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5590)을 참조하기 바란다. 기록에 따르면 3년(55년) 고구리 태조대왕은 한 군현이 있던 요서.. 2024. 3. 2.
교과서의 한반도 동예·옥저는 황하 이북에 있었다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5809 스카이데일리, 교과서의 한반도 동예·옥저는 황하 이북에 있었다 스카이데일리, 와 등 중국의 여러 사서에 “신라는 고구리의 동남... www.skyedaily.com 와 등 중국의 여러 사서에 “신라는 고구리의 동남쪽에 있으며, 한나라 낙랑 땅에 있었다. 옥저(沃沮)·불내(不耐)·한(韓)·예(濊)의 땅을 차지하였으며 백제에 부용(附庸)하였다”라는 기록이 있고, 에 “예는 북쪽으로 고구리와 옥저에 접하고, 남쪽은 진한과 접하고, 동쪽으로 대해, 서로는 낙랑에 접한다”는 기록이 있다. 위 기록들에서 신라가 차지한 낙랑과 옥저·불내·한·예는 서로 인접한 지명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중에서 불내는 고구리 동천태왕 때.. 2024. 3. 2.
신라는 고구려 동남쪽, 중국 중원 산서성에 있었다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5590 스카이데일리, 신라는 고구려 동남쪽, 중국 중원 산서성에 있었다 스카이데일리, 신라의 천년고도라는 금성(金城)이 지금의 경상도 경주라는 것은 ... www.skyedaily.com 신라의 천년고도라는 금성(金城)이 지금의 경상도 경주라는 것은 그야말로 반도사관에 중독된 일제식민사학계의 이론일 뿐이다. 과연 신라가 천년 동안 경주(금성) 한 군데만을 도읍으로 했는지 여러 기록을 통해 상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신라의 초기도읍지에 관한 기록들 ◆ 에 의하면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갑자년(B.C57)에 개국했는데, 왕도의 길이가 3,075보 너비가 3,018보이며 35리(里)에 6부가 있었다. 21년(B.C37).. 2024. 3. 2.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 한반도 경북에 없었다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4.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