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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컬럼에서는 자신들의 두목 우거를 죽이고 한 무제에게 투항하여 그의 제후가 된 5명의 반역자가 봉지로 받은 지역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지역은 바로 위만·우거가 다스리던 땅으로 과거 기준 왕이 다스리던 번조선의 땅과도 일치하며, 이곳 일대에서 일명 한사군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지역은 현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일대로 귀결된다.
한사군전쟁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기록한 <사기 조선열전>에는 패수(浿水)라는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즉, 패수가 어디인지를 찾으면 한사군의 위치가 저절로 밝혀진다고 할 수 있다. 패수는 고대사의 지명을 밝히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지명 중 하나이다. 따라서 한사군전쟁이 일어났던 패수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다면 우리 역사강역을 거의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여러 사서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강이다.
한사군전쟁 외 주요기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패수는 위만이 번조선으로 망명하면서 건넜던 강이다. 즉, 조선과 연나라와의 국경이다.
② <신당서>에 고구려(高句麗)의 남쪽 경계로 기록돼 있다.
③ <삼국사기>에 “4년(395) 광개토태왕이 패수에서 백제와 싸워 크게 무너뜨렸고 팔천여 명을 사로잡았다”라는 기록이 있어, 패수는 고구리와 백제의 국경지대임을 알 수 있다.
그 기록의 근거를 하나하나 찾아보도록 하겠다.
▲ 중국의 한사군도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식민사학계의 한사군도. <이미지=필자제공>
① <북부여기> 시조 해모수 단군조에 “기해 38년(B.C202) 연의 노관이 다시금 요동의 옛 성터를 수리하고, 동쪽은 패수(浿水)로서 경계선을 삼으니 패수는 곧 지금의 난하(灤河)이다. 병오 45년(B.C195) 연의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의 무리인 위만은 우리에게 망명을 요구했으나 단제께서 이를 허락지 않았다. 번조선 왕 기준이 크게 실수하여 마침내 위만을 박사로 모시고 상·하 운장을 떼어 봉했다”라는 기록에서 패수는 북부여와 연(燕)의 국경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패수가 지금의 난하라는 지명비정은 찬자의 견해이다.
<수경주>에 “옛 연 사람 위만이 패수로부터 서쪽 조선까지 갔다.(昔燕人卫满,自浿水西至朝鲜)”는 기록이 있고, 또한 <삼국지 위지 위략>에는 “한나라에서 노관을 연왕으로 삼았다. 조선과 연은 추수를 경계로 삼았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갔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호복을 입고 동쪽으로 추수를 건너 망명했다.(漢以盧燕王 朝鮮與燕界於溴水 及反入匈奴 燕人衛滿亡命胡服東渡水)”라는 기록이 있는데 위만이 망명하면서 건넌 강이 추수(溴水)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패수(浿水)=추수(溴水)로 같은 강을 말하는 것이다.
② <신당서 열전 145-동이전>에서 高句麗를 설명한 기록인 “고리는 본부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땅 동으로 바다를 건너면 신라가 있고 남으로 바다를 건너면 백제가 있다. 서북에서 요수를 건너면 영주와 접하고 북쪽은 말갈이 있다. 그 나라 임금은 평양성 또는 장안성이라 일컫는 곳에 기거하며 한나라 낙랑군 땅이었다. 경사로부터 오천 리를 가면 산을 따라 굴곡지게 휘감으며 성곽을 이루고 남쪽 끝에는 패수가 있다. (高丽,本扶馀别种也。地东跨海距新罗,南亦跨海距百济,西北度辽水与营州接,北靺鞨。其君居平壤城,亦谓长安城,汉乐浪郡也,去京师五千里 而赢随山屈缭为郛, 南涯浿水,王筑宫其左)”에서 패수는 고구리의 남쪽 경계이고 동시에 백제의 북쪽 경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패수에 대해 <삼국사기 잡지 지리>에서는 중국의 여러 기록 등을 인용하면서 “평양성은 지금의 서경(西京)인 것 같고, 패수는 바로 대동강(大同江)이다”라고 단정지었다. 이러한 지명비정은 중화모화사상에 중독된 유학자들의 반도사관으로 얼룩진 지명비정이라 할 수 있다. 과연 그런지 패수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한사군전쟁의 주 무대인 패수는 과연 어디일까?
패수(浿水)가 기록되어 있는 사서로는 <한서지리지>가 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유주(幽州)에 속해 있는 10개 군 가운데 낙랑군(樂浪郡)이 있고 그 낙랑군의 25개 현 가운데 패수현이 있다. 유주는 산서성 남부와 북부하남성에 걸쳐있는 행정구역이다. 그 결정적 근거로는 고죽국 백이·숙제의 묘가 있는 곳이 요서군이기 때문이다.
(낙랑군) 한 무제 3년에 설치했다. 유주에 속한다. 가구 수는 62,812호이고 인구는 406,748명으로 운장이 있다. 25개현으로는 조선현, 패수현, 수성현, 대방현 등이 있다. 패수현 서쪽으로 증지현까지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함자현에서 대수가 서쪽으로 대방현까지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분려산에서 열수가 나와 서쪽으로 점선까지 820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乐浪郡) 武帝元封三年开。莽曰乐鲜。属幽州(속 유주)。户六万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万六千七百四十八。有云鄣。县二十五:朝鲜(조선),讑邯,浿水(패수),水西至增地入海。莽曰乐鲜亭。含资,带水西至带方入海。黏蝉,遂成,增地,莽曰增土。带方(대방),驷望,海冥,莽曰海桓,列口,长岑,屯有,昭明,高部都尉治。镂方,提奚,浑弥,吞列,分黎山,列水所出。西至黏蝉入海,行八百二十里。东暆,不而,东部都尉治。蚕台,华丽,邪头昧,前莫,夫租。
또한 패수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서로는 <금사(金史)지리지 권5>을 들 수 있다.
(번역) “4개현과 6개의 진이 있다. 하내기, 태행 단층이 있고, 태행산, 황하, 심수, 패수가 있다. 무덕, 백향, 만선, 청화 등 4진을 두다. 수무현에 탁록성이 있다. 승은진이 있다. 흥정 4년 수무현 중천촌을 산양현으로 하여 휘주에 예속시켰다. 무척현에 태행산이 있고 천문산, 황하, 심수, 송곽진이 있다.”
(원문) 縣四、鎮六: 河內倚。有太行陘、太行山、黃河、沁水、浿水(패수)。鎮四 武德、柏鄉、萬善、清化。修武有濁鹿城。鎮一承恩。山陽興定四年以修武縣重泉村為山陽縣,隸輝州。武陟有太行山、天門山、黃河、沁水。鎮一宋郭。
위 <금사지리지>에서 말하는 지역은 바로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는 지역들이다. 청나라 때 만든 <대청광여도>에서 보듯이 태행산, 심수, 수무, 무척, 천문산 등은 모두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는 지명들이다. 따라서 패수(浿水)도 당연히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금사지리지에 언급된 지명이 다 들어있는 대청광여도. <이미지=필자제공>
패수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명일통지>와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의 기록을 보기로 한다.
<명일통지> 추수(溴水)는 (하남성) 제원현에 있다. 물의 근원이 세군데 있는데, 동남류해 롱수(瀧水)와 합해져 동남으로 흘러 온현에서 황하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明一統志> 溴水在濟源縣 其源有三 一出琮山俗呼白澗水春秋公諸侯于梁此 一出縣西二十里曲陽城西南山 一出陽城南溪俱東南流與瀧水合又東南至溫縣入于黃河
<중국고대지명대사전> 원산은 하남성 제원현 서북 삼십리에 있다. 지금은 종산이라 부르는데 추수(溴水)가 나오는 곳이다. 상련자가 망산이라 한다. 롱수가 여기서 나온다. (原山:在河南济源县西北三十里,今名琮山,溴水所出,相连者为莽山,泷水出焉。)
즉, 위만이 건넌 패수(=추수)는 바로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는 제원현에서 세 물줄기가 만나고 온현을 지나 황하로 흘러 들어가는 강으로 현재 망하(蟒河)라 불리는 강이며, 추수란 이름도 아직 현대지도에 동류(東流)하는 강으로 그려져 있다. 즉 이곳이 연나라와 조선과의 국경이었으며, 한사군전쟁의 주 무대였고, 위대한 대제국 고구리의 남쪽 경계이며 백제의 북쪽 경계였던 것이다.
▲ 패수(=추수)는 황하 북부 하남성 제원시를 흐르는 강의 위치(위 지도)와 제원시를 흐르는 추하(패수)의 현재 모습. <이미지/사진=필자제공>
패수는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에 따르면, 패수는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패수 서쪽을 지키는 패수서군(浿水西軍)과 패수 상류를 지키는 패수상군(浿水上軍)이란 표현이 있는데, 같은 내용을 서군과 상군으로 각각 다르게 기록했기 때문에 패수의 서쪽 = 상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수경(水經)>에 “패수는 낙랑군 루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浿水出乐浪镂方县,东南过临浿县,东入于海。《十三州志》曰:浿水县在乐浪东北,镂方县在郡东 盖出其县南迳镂方也。谓出浿水迳镂方也。)”라는 기록이 있고, 허신의 <설문해자>에도 “浿水出镂方,东入海 (패수는 루방에서 나와 동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는 기록이 있어, 패수는 분명 동쪽으로 흐르는 강임을 알 수 있다.
▲ <수경>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물줄기. <이미지=필자제공>
역사적 기록이 이렇듯 분명함에도 강단사학계는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이론을 추종해 한사군 전쟁의 주 무대인 패수를 청천강으로 비정하면서 식민지 한사군의 핵심인 낙랑군을 대동강 평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천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기 때문에 물 흐르는 방향이 사서기록과 전혀 맞지 않는 강이다. 사실 한반도에는 지형상 동류하는 강을 두만강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재야사학에서 패수로 비정한 요하나 난하도 동류하지 않는 강이다.
▲ 북한까지 중국 영토로 그리고 있는 중국의 지도. <이미지=필자제공>
우리 역사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식민지 한사군은 중국 역사가들의 붓장난에 의해 왜곡된 것이었으며, 설사 설치됐다 하더라도 패수가 있는 지역인 황하북부 하남성 일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일제는 조선의 영원한 식민지배를 위해 단군신화라는 괴상한 용어를 만들어 찬란했던 조선의 역사를 지워버렸으며, 이민족인 위만이 고조선을 계승했고 그 땅에 식민지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조작했던 것이다. 또 고조선이 예로부터 중국의 식민지였으니 지금의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엉터리 식민사학의 역사이론을 고수하다가는 조만간 중국에게 북한 땅을 빼앗길 수도 있다. 중국은 북한에서 정변이 일어나 정권이 무너질 경우 무력으로 개입해 북한 땅을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키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 명분을 식민지 한사군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북한 땅은 예전에 고대 중국(한나라)의 영토였는데, 그동안 동이족의 후예들이 무단 점거하고 있었다. 이제 그 땅을 수복했노라” 그래서 동북공정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 동북공정의 최종 목표는 북한 땅을 중국영토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그 이론적 배경은 한사군이다. <이미지=필자제공>
올바른 역사를 찾지 못하면 조상들이 물려준 땅도 잃어버리고 급기야는 민족 모두가 공멸하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바른 역사를 정립하는데 국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소를 잃는 게 아니라 아예 주인을 잃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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